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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데우스
감독 밀로스 포먼 (1984 / 미국)
출연 톰 헐스,F. 머레이 아브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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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0년 겨울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피겨 스케이팅에서 김연아가 금메달을 땄다. 피겨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다른 선수들보다 점수가 월등히 높아 굉장히 놀랐다. 어린 선수가 어떻게 저렇게 침착하게 경기에 임할 수 있을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하였기에, 긴장된 모습도 보이지 않고 저런 안정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지 감탄할 저절로 나왔다. 깊게 탐구할만한 가치가 있어 보인다. 심지어 존경심까지 생겼다. 저런 모습은 나이에 상관없이 배워야 할 점이 아닌가 싶다. 김연아 처음 두각을 나타내던 2006년이었다. 하지만 그 후 그녀는 잦은 부상 때문에 실력에 비해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하지만 부상을 극복하고 이겨낸 후 무수한 대회에서 수차례 우승을 하며 점점 다른 선수들과의 격차를 벌려 나갔다. 신문을 보니 4년 전에는 너무 힘들어서 피겨를 포기하려 했다고 한다. 애석한 일이다. 현 우리나라 체육관리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살짝 수 있는 부분이다. 만약 그랬다면 우리나라는 정말 큰 스포츠 인재를 잃을 뻔했다. 아마 지금 우리 사회 곳곳에 예전 김연아와 같이 관심을 받지 못하는 운동선수들이 많을 것이다. 앞으로 김연아와 같은 이런 인재를 양성하고 길러내려면 더 많은 지원을 해야 한다.

 

한편으로 은메달을 차지한 일본의 아사다 마오에 눈길이 갔다. TV해설자와 인터넷 뉴스에서는 아사다 마오가 실수하는 장면을 지적하며 실력보다 점수를 많아 받았다고 했다. 나야 피겨를 잘 모르기 때문에 어떤 기준으로 점수를 주는지는 알 수 없고, 우리나라 선수가 이겨서 그런 지 경기 내용 자체에는 별 달리 관심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인간적으로 왠지 아사다 마오가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은,동메달도 충분히 가치 있고 훌륭한 것이지만 항상 일등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하고 들러리 역할을 해야 하는 그녀가 불쌍해 보였다. 특히 어린 그녀가 울먹일 듯 하며 울음을 꾹 참고 웃는 모습이 측은하게 느껴져 곁에 있다면 안아주고 싶었다.

 

그녀의 모습을 보니, 영화 ‘아마데우스’가 떠올랐다. 천재 모차르트의 삶에 관한 영화다. 그 중 그와의 라이벌로 -혼자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지만- 등장하는 살리에리가 아사다 마오와 오버랩 되었다. 영화 속에 나오는 살리에리란 인물은 항상 모차르트 그늘에 가려진 2인자였다. 그는 모차르트를 보며 항상 열등감과 질투심에 불타 있었다. 어떻게 하면 모차르트를 꺽을 수 있을까 고민하며 노력하지만 사람들의 평가는 물론이거니와 자신조차 결국 그를 뛰어 넘을 수 없다는 사실에 좌절을 느낀다. 심지어 모차르트를 신 앞에 저주까지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특별히 승부욕도 별로 없고 혹은 자신이 어느 분야에 있어 그렇게 뛰어나게 두각을 나타내지 않는다면 이런 마음이 들기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 역시 그 분야에 있어 자타가 인정하는 뛰어난 사람이라면 아마 살리에리가 충분히 이해되지 않을까 싶다.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했던 분야에 자신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 있다면 과연 어떤 기분이 들까? 단 한 단계만 뛰어 넘으면 자신이 최고가 될 수 있는데, 한 사람 때문에 절대 그 자리에 갈 수 없다면 아마 굉장히 괴로울 것이다. 내게도 그와 비슷한 상황이 대학교를 다닐 때 있었다. 당시 시험을 보고 학점이 나오면 난 항상 차석을 했다. 수석을 해 본 적은 단 한 차례도 없다. 그래서 어떻게든 한 번만이라도 수석 하는 친구를 넘어 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결국 그런 기회는 내게 오지 않았다. 물론 난 살리에리처럼 그렇게 분노를 하거나 괴로워하지는 않았다. 나보다 훨씬 더 열심히 노력하는 그 친구의 모습을 보며 결과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비록 순간이지만 심적으로는 결과가 나오면 아쉬움이 들 때가 종종 있었다. 0.01점만 넘었으면 되는데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냉정히 말해 그 친구보다 최선을 다하지 않고 노력하지 않았다면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은 일종에 욕심이다. 그러기에 깨끗하게 수용하고 미련을 두지 말아야 한다.

 

물론 나와는 다르게 아사다 마오나 살리에리는 자기 분야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실력자들이다. 그들이 김연아나, 모차르트보다 노력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절대 뛰어넘을 수 없을 때의 좌절과 실망 그리고 상심은 얼마나 컸겠는가를 생각해 본다. 아마 해도 안 된다는 생각은 이럴 때 들지 않을까 싶다. 세상이 아무리 2등도 3등도 훌륭하다 말하지만 결국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것은 최고 밖에 없는 현실이니 말이다. 가장 큰 것은 누군가의 기억에 남는 평가 때문이다. 인간 본연의 관심 받고 싶은 욕구가 -물론 더불어 인간 본능적인 이기려는 근성, 즉 승부욕도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한다. 가장 꼭대기에 서기 위한 피나는 노력, 그 마루에 섰을 때 느끼는 희열감은 도대체 무엇일까? 모두를 내가 정복해서 내 위에 아무도 없다는 만족감인가? 정복 감보다는 바로 모든 사람이 자신을 향한다는 그 짜릿한 쾌감이 아닐까 한다. 다른 것보다도 이것이 가장 크다고 본다. 대부분 사람들은 처음에 아무리 어색해 할지 몰라도 주목 받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그 점을 아이들만 봐도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항상 부모, 친구, 선생님에게 관심을 받고 싶어 한다. 이는 태어나면서부터의 원초적 본능이다. 커서도 사라지지 않는다고 본다. 우리 사회를 보면 직업 중에도 많은 사람들이 관심이라는 인기를 먹고 사는 것만 봐도 관심이란 것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그중에서 최고의 인기를 얻는 사람은 그 감각을 잃을 수 없어서인지, 유지하기 위해 무단히 노력한다. 아마 두려움 때문인 것 같다. 1등이 있는 곳에 2등은 없다. 최고인 1등과 그 외라고 해야 맞는 표현 같다. 1등만이 가장 큰 관심을 받고 나머지는 그저 그렇다. 특히 인기에 민감한 사람들은 더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들은 1등을 돋보이게 하는 그늘이 되고 싶지 않아 피나는 노력을 한다. 소외받는 건 무척이나 외롭고 자존심 상하는 일이니까. 그래서 그 맛을 강하게 아는 사람들은 더욱 1등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자칫 1등의 권위 앞에 도전했다가 실패하면 모진 시련을 당하기도 한다. 다시는 일어설 수 없을 정도로 무서운 고통이 기다릴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외가 되기 싫어서 목숨을 걸고 싸운다. 이들에게 이것은 어떤 것보다 중요한 일이다. 인기의 맛은 마약과도 같다고 하니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런 심리적인 상태가 특히 예술이나 스포츠 분야에 보편적으로 퍼져 있어 보인다. 참 기막힌 세상이다. 물론 모든 사람을 지칭할 수는 없으나, 이것 때문에 울고 웃는 이 세상이 안타깝다. 그렇기 때문에 아사다 마오, 살라에리에게 동정이 간다.

 

결국 이런 상황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서비스 산업이 발달하고 자기 홍보가 중요한 이 시대에는 관심을 받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더 과열될 것이다. 하지만 쉽게 그것을 바꿀 수도 없을 것 같다. 아니 불가능하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본능은 감출 수는 있어도 없앨 수는 없는 것처럼 말이다. 단지 우리가 보다 넓게 관심을 갖는 노력을 하는 수밖에 없는 듯싶다. 그래서 조금은 아쉽더라도 스스로 ‘괜찮아’하며 일어설 수 있도록 용기를 갖게 만들어 줘야 할 것 같다. 그래서 모두가 상처받지 않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나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을 알면서도 그냥 모두가 행복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런 소망을 갖는다.

Posted by 믿음의 청년
그들이말하지않는23가지장하준더나은자본주의를말하다
카테고리 경제/경영 > 경제일반 > 경제이야기
지은이 장하준 (부키,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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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평과 평등의 차이는 어떻게 다를까? 언뜻 생각하면 비슷한 말 같이 생각하다가도 곰곰이 생각해 보면 뭔가 다른 느낌이 풍긴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이것에 대해 한번쯤 고민해 보며 머리가 아플 것이다. 하지만 공평과 평등은 비슷하면서 무척 다르게 사용된다. 일반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공평이란 말이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평등이란 말이 더 많이 사용된다. 예를 들어 일한 만큼 결과를 얻는 것은 공평한 것이다. 하지만 그와 상관없이 결과물이 똑같다면 평등하다고 말한다. 이것을 바탕으로 자본주의 경제학자들은 자본주의 사회야 말로 거짓이 없이 최상의 사회라고 말한다. 누구나 일한만큼 가져가기 때문에 전혀 불공평하지 않은 사회라고 말한다. 만약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그만큼 일하지 않은 사람과 똑같은 결과물을 얻게 된다면 당사자가 그 허탈감으로 과연 앞으로도 더 노력할 수 있는지에 대해 따진다. 그렇기에 그런 사회는 발전도 없고 미래도 암담하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실제 그들의 말대로 공산주의는 실패했다. 여러 가지 요인이 있지만 지나친 평등이 사회를 무너뜨리는데 일정부분 일조한 면이 있다. 모든 것이 국가 위주로 계획되고 실행되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굵직한 사업들은 어느 정도 성공한 면도 있으나, 실상 삶에 있어서 필요한 부분이 발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그 체제 내 사람들은 속박된 자유로 인해 꿈을 갖고 더 많은 것을 해 보겠다는 의지보다는 단순히 현실에 안주하는 면이 컸다. 더불어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일당 정치를 실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분배의 평등은 있었을지 몰라도 -대부분 힘없는 민중들, 주류지배층은 이데올로기에 상관없이 항상 부유하다- 기회의 평등이 없어서 사회를 변혁시킬 힘조차 없었다. 단순히 이런 면만 놓고 생각한다면 공평한 것이 훨씬 정의로워 보인다. 하지만 개개인 지니고 있는 능력과 상황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신체에 장애가 있거나, 일하기 힘든, 노인에게 공평의 잣대를 들이댈 수 있을까? 더불어 우리나라처럼 남녀평등이 완숙하지 않은 사회에서 신체적으로 연약한 국방의 의무를 지지 않는 여성들에게 공평의 대가를 요구 한다면 과연 그녀들은 가만히 있을까? 그리고 공평의 기준은 무엇으로 나눠야 하는가? 예를 들어 한 회사에 일반 사원이 한 달에 200만원을 받고 사장이 2억을 받는다고 하면 과연 그 사장은 그 사원보다 100배의 일을 더 한 것일까? 회장은 20억씩 받는다고 하면 그 회장은 사원보다 1000배의 일을 더 한 것일까? 이것이 과연 공평하다고 말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이런 불공평을 막기 위한 보안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 이 책의 요지다.

 

저자는 비주류 경제학자지만 그를 좌파 경제학자라고 부를 수 없다. 본인 스스로가 자신은 자본주의 지지자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말하고 있는 자본주의는 여태 우리가 보아왔던 자본주의와는 다르다. 자본주의하면 승자독식의 냉엄함이 지배하는 사회로 우리는 알고 있다. 그래서 노력하면 그만큼 얻고 게으르면 도태되는 사회이기 때문에 우리는 무단히 일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가 주장하는 바를 언뜻 보면 마치 사회주의자가 아닐까 할 정도로 진보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의 주장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여태 선진국이라 불리던 나라들이 과거에 해 오던 수단을 말하고 있으면 지금까지도 유지하고 있는 체제에 대해 설명한다. 그리고 현재 신자유주의가 팽배한 사회보다 그런 상황 속에 적절한 보안장치가 마련된 자본주의가 얼마나 많은 발전을 이루었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현재 발전한 선진 자본주의 사회와 개발도상국들이 적절히 보안장치를 사용해 함께 발전해 나가길 기대한다. 언뜻 보면 저자는 평등을 강조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그는 평등이 아니라, 인간이 유지해야 할 기본권을 말한다. 개발도상국이 선진국만큼 똑같은 위치가 되어야 한다는 것도 아니고 모두가 부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단지 같은 인간으로 태어나 최소한 권리를 갖고 삶을 사는데 억울하지 않게 세상이 받쳐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예로 제시한 나라들이 바로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위치한 나라들이다. 사회복지가 튼실하면서 경제도 함께 발전하는 나라를 이상향으로 보고 있다.

 

파이 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파이가 커질수록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이 먹을 수 있는 분량이 커진다는 것이다. 이 이론을 주장하는 이들은 파이가 아직 작을 때 섣불리 손을 대서는 안 되고 기다릴 줄 아는 모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언뜻 들으면 맞는 말 같지만 실제 파이가 커진다고 일반 보통 사람들에게 돌아오는 몫이 커지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처음 만들어진 파이를 100으로 놓았을 때, 주류가 삼십 일반 비주류가 70을 먹는다고 치자. 그리고 열심히 노력할 결과 이 파이가 열 배로 커졌다. 이 때 우리의 상황은 어떻게 될까? 현재 우리 사회를 보면 답이 나온다. 주류가 930을 먹고 비주류는 70을 먹는다. 결국 비주류에게 돌아오는 것은 그대로다. 왜 이런 억울한 일을 당할까? 바로 보안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저자가 말하는 건전한 자본주의가 바로 이 장치가 무엇인가이다. 그 장치가 제대로 발휘되고 제 역할을 할 때 사회는 어느 곳에서도 손해가 나지 않고 발전할 수 있다. 여기서 바로 국가의 역할과 선진국들의 역할에 대해 강조한다.

 

공평이든 평등이든 결국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판단하는 관점이 달라진다. 공평을 요구하는 이들은 보통 지배층이다. 굉장히 주관적은 공평이다. 그들의 입에서는 평등이란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 평등을 요구하는 이들은 피지배층이다. 이들은 객관적이 모습이 강하다. 그럼에도 이들 입에서는 동시에 공평도 함께 나온다. 이 개념을 제대로 알아야 자신들도 한 단계 위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여하튼 각 자 처해진 입장에서 보다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무단히 싸워왔다. 이와 같은 문제 때문에 역사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이념이 들어서기 전부터 투쟁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아직까지 제대로 해결을 보지 못했다. 그렇다고 무작정 이 상태로 내버려 둘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런 때는 삼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해결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바로 국가가 그 역할을 할 수 있다. 결국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라 해도 개인적 자유로만 세상이 돌아갈 수 없다. 결국 개인은 자신의 영역 밖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놓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이 때 국가가 일정부분을 담당해 개인이 보지 못한 부분들에 대해 관리하고 신경을 써야 이 사회가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적절하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평등의 개념이 들어갈 수 있고,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공평의 개념이 들어갈 수도 있는 것이다.

 

함께 발전하고 소외되는 사람이 없는 아름다운 세상. 저자가 꿈꾸는 세상이 바로 이런 세상이 아닐까 싶다. 무슨 비현실적 이야기를 하냐고 묻는 사람들에 그는 자신의 주장이 이론적으로 전혀 이상적이지 않다는 것을 증명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우리 사회에 이와 같은 목소리가 크게 들리지 않는다. 자기계발서 종류의 책에는 어떻게 남과 달라야 내가 성공할 수 있는 지에 대해 소리 높여 말한다. 그리고 그런 책들은 보통 베스트셀러가 된다. 내가 있는 종교 집단만 하더라도 어떻게 해야 복을 받는 지에 대해 말하면서 더불어 함께 복을 받는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학교도 가정도 마찬가지다. 오로지 내가 잘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남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 사람을 수단과 도구로 만드는 사회, 과연 이것이 올바른 세상일까? 인간이 짐승과 다른 점은 양심이 있기 때문이다. 종교가 있고 없고 간에 모든 이들은 항상 바른 것을 지향하는 것은 바로 보편적인 타인을 향한 마음 때문이다. 이 사회 구성원들이 바로 그런 점에 눈을 떠 주변을 둘러 보아야 한다. 그리고 요구하고 권리를 찾아,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보다 보편적 평등과 공평이 함께 발전하는 사회를 이루기를 바란다.


Posted by 믿음의 청년
나는아이보다나를더사랑한다아이보다더아픈엄마들을위한심리학
카테고리 가정/생활 > 자녀교육 > 부모교육
지은이 신의진 (걷는나무,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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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아이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권해 주고 싶은 책이다. 그 중 아이 때문에 어려운 문제를 겪고 있고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는 분들이 있다면 더욱 읽어 볼 필요가 있는 책이다. 아이 엄마들을 위한 책이라고는 하지만 내가 생각할 때 아빠들도 함께 보면 좋을 것 같다. 미혼이기 때문에 쉽사리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이 어렵지만 육아를 책임지는데 있어 우리 사회에 아빠의 역할이 너무 부족하다. 물론 성별이 지니고 있는 생리학적 구조와 처해있는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엄마에 대해 이해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엄마들이 겪는 고충에 대해 일정부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주변에 남녀가 결혼 후 아이가 생긴 뒤 여러 문제를 겪는 것을 자주 봐 왔다. 대부분이 소통의 문제였다. 하지만 어떤 문제를 갖고 있는지 대화하기도 쉽지 않다. 그런 측면에 있어 이 책은 상당히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난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결혼 전 이 책을 봄으로 결혼 후 겪을 상황에 대해 미리 알 수 있어서 좋았다. 나중에 결혼을 하게 되면 아내 될 사람에게 이 책을 꼭 권해 줘야겠다.

 

이 책의 중점은 아이 엄마들이다. 아이를 갖게 되고 기르면서 겪는 엄마들의 어려움과 고충이 어떤 원인 때문에 나타나고 그 결과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며 자신은 어떤 어려움을 겪게 되는 지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난 엄마들이 그 정도로 힘들지 몰랐었다. 그에 따라 받는 스트레스 역시 내가 생각하는 이상이었다. 때로 사람들이 남녀평등에 대해 토론을 할 때 말도 안 되는 비유로 남자들의 군대와 여자들의 출산에 대해 이야기 할 때가 있다. -엄연히 분야가 다르기 때문에 비교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기 굳이 그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엄마들이 겪는 상황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보통 남자들은 군대는 긴 시간 고통의 연속이고 출산은 잠시간이기 때문에 본인들이 더 고생을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적으로 여자들이 겪는 고통의 시간은 애를 낳고 나서 몇 년간이다. 어린 육아를 대하는데 있어 아빠는 한계가 있는 시기가 있고 엄마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는데, 그 기간이 상당하다. 물론 육아를 고통으로 비유하는 것도 옳지 않은 표현이라 할 수 있지만,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든 건 현실적으로 사실이다. 용납할 수 없지만 그래서 간혹 뉴스에 친부모에 의한 유아 살인 사건 같은 것이 일어나지 않는가 싶다. 그만큼 아이를 기르는 것이 쉽지 않다.

 

소아정신과 교수이자 의사인 저자는 아이가 아직 완전한 정체성을 갖추기 전 시기 엄마들이 본인이 겪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가에 따라 아이의 성장이 달려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엄마가 정신적, 육체적으로 건강하면 아이도 건강하게 자라게 되고 엄마가 우울해 있으면 아이 역시 우울함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본다. 아이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 보통 엄마에게 더 큰 문제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 엄마는 항상 자신의 상태를 바라보며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아이를 위한다고 생각하는 일들이 사실은 스스로 만족감을 위하는 일은 아닌지 생각해 보고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현실을 부인하면 부인할수록 아이와 멀어져 아니는 아이 나름대로 어려움을 겪고 엄마는 엄마대로 괴로워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자신에 대해 분명히 알고 결과에 있어 원인이 어떻게 발생했는지 생각해 보고 고쳐야 한다. 그러면 자신도 행복해지고 아이도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고 말한다. 내용이 충분히 설득력이 있는 것은 저자 또한 두 아이의 엄마로서 겪었던 사건들을 끄집어냄으로 비슷한 시기를 겪는 엄마들에게 공감을 얻어낼 수 있다. 그렇다고 자신의 아이들 상황으로 국한해서 주관적으로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여태 저자가 상대해 왔던 엄마들과 아이들을 상대로 겪었던 경험들을 토대로 말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꼭 아이를 둔 엄마들 -특별히 난 아직 중고등학교를 가기 전 엄마들에게 추천해 주고 싶다- 참고해 읽어 보았으면 한다. 정말 여러모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책의 의도와 조금 빗나갈지 모르겠지만 나 자신에 대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가끔 스스로에 대해 생각해 볼 때가 있다. 지금의 나란 존재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스물 살 이후 사람들에게 항상 자신감 있는 모습만 보여 주며 살았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표현은 잘 안하지만 살면서 지칠 때가 너무 많았다. 특히 성인이 된 후 잘 지내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무기력하게 무너지는 내 모습이 당황스러웠다. 병이라고 할 것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문제는 심각해 보였다. 나 자신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고 자신감이 없으면서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원활하게 맺을 수 있을까. 더욱이 사람을 상대로 하는 분야에 속해 있으면서 자신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것은 상대방에게 곤란을 줄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실제 그런 분들을 내가 속해 있는 곳에서 많이 봐 왔다. 사람의 정신적 분야, 종교적으로 말하면 영적 분야를 지도하고 이끄는 분이 오히려 상처를 주고 타인에게 걱정을 끼치기도 한다. 그 모습을 보며 긴장이 됐다. 내가 나중에 저러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도 들었다. 물론 성직자도 사람인지라,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이상의 도덕, 정신력을 필요하다. 하지만 계속 이런 모습이라면 정말 심각할 것 같다. 그 원인이 무엇인지 이 책을 읽으며 조금은 알게 되었다.

 

이 시기 엄마들이 미치는 영향이 아이들을 어떻게 만들게 되는지에 대한 내용을 읽을 때, 내 유년기 시절이 생각났다. 그리고 그 때 내가 부모님에게 받았던 상처들. 해결 없이 덮어두고 지금껏 지내왔던 것 같다. 나 스스로 신앙을 갖고 풀었다고 생각했는데, 내 내면으로 그러지 않았나 보다. 물론 이미 많이 늙어 버리신 부모님을 원망하고 그들 앞에 따지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혼자만이라도 기회가 되면 그런 시간을 가져봐야겠다. 생각해보면 난 살면서 나 스스로도 속이며 살아온 것 같다. 꺼내 놓으면 다칠까봐 당당하게 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결국 두꺼운 가면 속에 속만 썩어가는 꼴만 된 것 같다. 오히려 지금 나이가 되니까 더 불안하고 두려움이 생긴다. 평균적 수명으로 봤을 때 앞으로 살날이 더 많은데, 계속 그렇게 가슴 속에 무거운 짐을 지고 살 수는 없다. 이제 다 벗어 버리고 내 상처를 드러내 고쳐야겠다. 결국 곪은 상처는 공기를 맞아야 아무는 것처럼 그 방법 밖에 없는 것 같다. 나를 위해서 그리고 내게 영향을 받을 누군가를 위해 부끄럽고 두려워도 꼭 해 나가야겠다.

 

과거 대학을 다닐 때 심리학이나 상담학 책들을 조금 접해봤다. 이 책이 그 책들에 비해 대단히 특별할 것은 없다. 하지만 실제적인 부분들에 마음이 상당히 와 닿았다. 내가 나중에 좋은 아빠 그리고 남편이 되는데 상당히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 같다. 책이란 것이 내가 부딪히는 현실에 완벽한 교과서가 될 수는 없지만 도움을 줄 수 있는 좋은 보조 장치의 역할은 충분히 할 수 있다. 이 책은 그런 면에 있어 매우 훌륭하다. 나중에 내가 혹시 그 방향의 길을 잃었을 때 한 번씩 살펴봐야겠다. 좋은 길라잡이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장치 내 미래의 가정을 위해 비록 물질적으로 준비하는데 부족함이 있지만 정신적으로 많은 것을 준비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Posted by 믿음의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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